[기고] 독립은 정신이다
[기고] 독립은 정신이다
  • 김영근 기자
  • 승인 2022.11.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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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보훈지청 보상과 권은선 

여기 한 여성이 있다. 1872년에 태어난 그는 교육에 각별한 부친의 가르침을 받고 일찍부터 총명하였다. 19세, 꽃다운 나이에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얼마 후 남편은 유복자를 남겨놓고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 전투에서 전사한다. 홀로 남은 그는 밤낮으로 길쌈하며 시어머니와 외아들을 보살폈고 부친과 함께 의병장을 지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 46세에 비장한 결심을 품고 만주로 망명, 서로군정서 조직원들을 정성껏 뒷바라지하고 교회와 교육기관 여러 곳을 설립하여 독립운동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망명 생활 6년째인 1925년 4월, 동지였던 이청산, 채찬과 함께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기 위해 서울로 잠입하였으나 동지의 일부가 체포되는 등 일경의 삼엄한 경계로 거사는 미수에 그치게 된다. 이후 만주지역 독립운동계의 지도자인 김동삼 선생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으로 가장 후 면회하여 구출 작전을 세웠으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성공하지 못한다.

1932년, 주 활동 무대였던 만주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의 나이 또한 이미 60세가 되어 무장활동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의 만주침략을 비난하는 국제여론이 일어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국제연맹 대표단이 만주에 파견된다. 그는 독립의 뜻을 국제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하여 조사단장이 방문하는 당일에 왼쪽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혈서를 쓴다.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일제의 만주국 수립이라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독립에 대한 의지를 호소하는 시도였다.

그의 마지막 행보는 만주국 1주년 행사가 열리는 1933년 3월 1일이었다. 주만주국 일본 전권대사인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하기 위해 노파로 변장 후 무기와 폭탄 운반에 나섰으나 밀정의 밀고로 인해 거사 이틀 전인 2월 27일 하얼빈에서 체포되고 만다. 하얼빈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 수감된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자는 결심으로 단식투쟁에 들어가지만 여섯 달 동안 온갖 고초에 시달리면서 결국 곡기를 끊은 지 얼마되지 않아 숨을 거두게 된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바로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지사의 일생이다. 그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독립은 정신이다.”, “후손을 찾아 교육시켜라.”라는 유언을 남긴만큼 독립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처럼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찾는 데에는 남녀가 따로 있지 않았고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일제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무장투쟁과 교육활동 등에 적극 나섰던 그들,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어머니이자 아내, 며느리로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에 자긍심을 갖고 헌신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그들.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기억되기를 바라며 그들의 숭고하고 고결한 정신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이 땅 위에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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