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작과 끝,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날
[기고]시작과 끝,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날
  • 김영근 기자
  • 승인 2021.04.08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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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보훈지청 보상과 박지혜

[경기평화신문=김영근 기자]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선 빠르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3월 1일 하면 생각나는 것은? 3.1 만세 운동

둘. 8월 15일 하면 생각나는 것은? 광복절
그렇다면, ‘4월 11일 하면 생각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해선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일본 통치에 항거하는 시작점에 있었던 1919년 3.1 만세 운동과 3.1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끝내 얻어낸 결과인 1945년 8.15 대한민국의 광복. 그 사이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다.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나라 안팎에서는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국내에서는 한성(서울)에 ‘한성’정부, 국외에서는 중국 상하이에 ‘상하이’임시정부 그리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국민 의회’를 세웠다. 이후 임시의정원에서 논의를 거쳐 각지의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임시정부였다.

왕이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적 헌법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로 삼권(입법, 사법, 행정)이 분립 된 민주 공화정 정부.

독립신문 간행, 군자금 모금 그리고 외교활동 및 군사 활동 등을 했던 초기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 위기를 겪었음에도 점점 격정적으로 변해갔다. 김구의 주도하에 ‘한인 애국단’이라는 비밀결사체가 운영되었고, 한인 애국단에 속해있던 이봉창은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폭살하려고 시도하였고, 윤봉길은 상하이사변의 전승 기념식 장소인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가중되었고 결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한커우 광저우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충칭에 정착하였다.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 독립당은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고, 마침내 한국 광복군은 우리나라의 국권을 상실한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로부터 35년 만인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이 땅에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아오면서 ‘광복’을 이루었다.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여기서 글의 맨 처음에 언급했던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려 한다. 4월 11일은 무슨 날인가? 그렇다. ‘4월 11일’은 바로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또는 기억하고 3.1 운동. 그리고 8.15광복. 그 시작과 끝 사이에는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또는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날이 있다. 

/경기북부보훈지청 보상과 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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